전문가의 자리에 AI를 앉히는 고민, 이제는 시작해야 한다

권경애 사건을 운 나쁜 비극으로만 보면 결론은 몹쓸 변호사 한 명의 일탈로 끝난다. 하지만 유족이 항소심을 맡아줄 변호사를 구하는 것조차 어렵다고 말한 대목은 피해자가 문제를 바로잡으려 할 때 대체제나 구제 경로를 쉽게 찾을 수 없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여기에 2024년 변호사 징계가 206건으로 역대 최다였다는 보도까지 겹치면 문제를 특정 개인의 게으름이나 악의로만 설명할 수 없다. 정보 비대칭, 책임 추궁의 난이도, 폐쇄적인 구제 경로 같은 조건이 맞물리며 비슷한 실패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두운 법정 판사석 위에 균열 간 법봉과 잠긴 법전 더미 옆으로 빛의 격자가 새겨진 유리판이 서 있고, 오른쪽 문틈으로 황금빛이 비치는 장면
잠긴 법전과 열린 문틈 사이, AI 격자가 그 간격을 재고 있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6월 2일

2016년 학교폭력으로 딸을 잃은 어머니가 있었다. 가해 학생과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변호사를 선임했다. 수임료를 냈다. 그리고 기다렸다. 2022년 항소심에서 변호사는 재판에 세 차례 나타나지 않았다. 민사소송법 제268조 제4항에 따라 항소는 취하한 것으로 간주됐다. 변호사는 패소 사실을 수개월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정의를 위해 낸 돈은 그의 욕심에 쓰였다. 대법원이 6,500만 원 배상을 확정한 것은 2026년 5월 29일이었다. 사건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지난 뒤였다.

전문인가 독점인가 - 무엇을 위한 자격증인가

한국 민사 본안소송의 70% 이상이 원고와 피고 모두 변호사 없이 진행된다는 수치가 2026년 2월 국회 토론회에서 제시됐다. 공식 사법통계로 교차 검증이 필요한 수치지만, 방향성 자체는 부정하기 어렵다. 시민들은 이미 전문가 없이 법적 주체로 행동하고 있다. ‘선택’이라기보다 비용과 불신이 만든 현실에 가깝다.

2026년 3월, 두 개의 사건이 같은 달에 터졌다. 대법원은 리걸테크 기업이 제공하는 법률문서 자동작성 서비스를 ‘비변호사 법률사무’가 아니라 ‘기술적 도구’로 보아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동시에 행정안전부는 AI를 전면에 내세운 원스톱 행정서비스 추진단을 출범했다. 국가가 스스로 ‘전문가 중개’를 줄이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셈이다.

그런데 민간 리걸테크가 유사한 기능을 제공하면 곧바로 변호사법 제23조, 제34조 같은 조항이 소환된다. 기능이 비슷한데도 ‘발신자’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갈리는 이 비대칭은, 법률이 국민을 보호하기 보다는 독점을 지키는 장치로 전락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구조가 만든 무책임

권경애 변호사가 특별히 나쁜 사람이라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니라고도 누군가는 말하겠다. 하지만 나는 권경애가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한다. 어쨌든 핵심은 개인의 성향과 무관하게 변호사가 무단으로 세 번이나 재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조건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2024년 변호사 징계 건수는 206건으로 역대 최다였다는 보도는 적어도 문제가 누적되고 있다는 신호다. 물론 징계의 증가가 곧바로 무책임의 증가를 뜻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의뢰인이 변호사를 선임하기 전에 징계 이력, 위험 신호를 손쉽게 확인하기 어렵고 변호사 과실로 인한 손해배상에서 과실을 입증하는 일도 구조적으로 까다롭다는 지적은 반복되어 왔다. 유족이 항소심을 맡아줄 변호사를 구하는 것조차 어려웠다고 말한 배경도 여기와 닿아 있다. 같은 집단과 다투기 위해 다시 그 집단 내부에서 대리인을 찾아야 하는 구조가 생기기 때문이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1930년 <대중의 반역>에서 근대 사회의 전문화가 역설을 낳는다고 경고했다. 분업과 전문화가 깊어질수록 각 영역의 전문가는 자기 영역 밖에 대해 철저히 무지한 채로 그 영역 안에서 절대적 권위를 갖게 된다는 것이다. 오르테가가 붙인 이름은 전문가의 야만성(la barbarie del especialismo)이었다. 그가 경고한 것은 특정 개인의 무책임이 아니라 전문화된 시스템이 책임을 분산, 희석시키는 방식이었다. 변호사가 의뢰인의 운명을 사실상 쥐고도 재판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그 일을 막을 실질적 장치가 희박하다면 그것은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그런 죄를 짓고도 무사할 수 있다는 구조의 문제다.

드워킨은 법이 시민의 도덕적 자율성을 실현하는 제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 앞의 평등은 법 접근의 평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공허해진다. 법률 정보가 공공재라는 명제는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현실에서는 비용, 절차, 언어의 장벽이 그 공공재를 사실상 사유화해 왔다. AI는 그 장벽을 낮추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판사보다 공정한가, 아니면 덜 불투명한가

AI가 판사보다 더 공정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틀렸다. 더 중요한 질문은 판사가 AI보다 더 투명할 수 있는가? 이다.

대법원은 2026년 2월부터 재판지원 AI 시스템을 시범 운영하고 있다. 판례와 법령을 분석해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 AI의 분석 결과는 판사만 볼 수 있고 당사자는 볼 수 없다. 국민은 판사가 AI의 판단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알기 어렵다. AI는 이미 사법부 안으로 들어왔지만, 여전히 불투명하다.

한편 국민참여재판에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배심원 평결과 판사 판결의 불일치율은 7.5%였다는 자료가 있다. 배심원은 판사를 기속하지 않는다. 그러나 판사가 배심원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릴 때에는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는 장치가 작동한다. 법적으로도 배심원의 평결결과와 다른 판결을 선고하는 때에는 판결서에 그 이유를 기재하도록 규정돼 있다. 설명 책임이라는 장치가 재량에 제동을 거는 이유다.

그렇다면 배심원이 반드시 인간이어야 하는가. 배심원 제도의 핵심은 동료 시민의 참여라기보다 판사의 재량을 공개적으로 대조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고 설명을 강제하는 데 있다. 인간 배심원도 편견을 가진 시민이고, 선발 과정에서 이미 여러 필터링이 작동한다. 순수한 시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AI 배심원 - 판결이 아니라 설명 책임

AI가 판결을 내리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제안은 이것이다. AI를 1심에서 공개 배심원처럼 두고 AI가 사건의 사실관계, 관련 판례, 적용 법조를 바탕으로 판단 의견을 제출하게 하면 어떨까. 물론 판사는 그 의견을 채택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 다만 거부한다면 그 이유를 공개적으로 설명하도록 하자.

판사가 AI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낼 때 그 이유가 기록으로 남는다면 그 자체가 사후 검증과 사회적 통제의 기반이 된다.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왜 생겨났는지를 떠올리면 이 투명성이 갖는 의미를 가늠할 수 있다.

당연히 반론을 예상할 수 있다. AI 오류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그래서 최종 판단은 판사가 하는 것이다. 물론 판사도 인간이라 실수할 수 있겠지. 그 실수가 의도적인지 정말 실수인지는 몰라도.

AI의 민주적 정당성은 어디서 오는가, 라고 묻는다면 시스템을 국가나 이권단체가 아닌 청정한 제3자가 이를 운영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이 질문들은 도입을 막는 근거라기보다 도입의 설계 조건에 가깝다. 오픈소스 공개, 독립적 알고리즘 감사, 편향 검증 의무화 같은 장치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 설계의 문제다.

열린 결말은 가능한가

전문가의 자리에 AI가 앉아도 되는가. 이것도 틀린 질문이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책임지지 않는 전문가가 그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어야 하는가.

전문가 시스템의 허점, 무전유죄 유전무죄 논란이 없어질 수 없는 상태를 고려한다면 이제는 AI를 공개시스템 안으로 데려와야 한다. 민사소송의 70%가량이 변호사 없이 진행된다는 수치가 제시됐고(국민의 대부분은 제대로 된 법률 서비스를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권경애 사건은 10년에 걸쳐 마무리됐지만 정작 본인은 변협으로부터 사소한 징계를 받았을 뿐이다. 피해자들은 그저 몇 천 만원을 보상이라고 받아 오히려 마음에 상처만 더 커졌을 테지. 그리고 대법원은 이미 AI를 재판 업무에 들여놓았다.

어떻게 해석하더라도 변함없는 이 사실들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제도가 이 사실을 반영하지 않는다면 제도는 사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 말은 권경애 같은 변호사가 또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뜻이며 우리 중 누군가가 없는 돈을 긁어모아 변호사를 골랐을 때 그 변호사의 책임있는 행동을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 raylogue

FAQ

AI 배심원이란 무엇인가? 판사를 대체하는 것인가?

AI 배심원은 판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다. 1심 재판에서 AI가 사건의 사실관계, 관련 판례, 적용 법조를 분석해 판단 의견을 제출하고, 판사는 이를 채택하거나 거부할 수 있다. 다만 거부하려면 반드시 공개적으로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 현행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 평결이 판사를 기속하지 않지만 설명 책임을 부여하는 것과 동일한 구조다. AI 배심원의 핵심은 판결 권한이 아니라 판사 재량에 대한 공개 대조 기준을 만드는 것이다.

권경애 사건이 AI 사법 도입 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권경애는 2022년 항소심에서 재판에 세 차례 불출석했고, 민사소송법 제268조 제4항에 따라 항소는 취하한 것으로 간주됐다. 그는 패소 사실을 수개월간 유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대법원이 6,500만 원 배상을 확정한 것은 2026년 5월로, 사건 발생으로부터 10년이 걸렸다. 이 사건은 전문가에게 돈을 지불해도 책임 구조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체적 사례다. AI 배심원 제안은 이런 구조적 무책임을 제도 설계로 억제하려는 시도다.

AI가 법률 판단을 내리면 오류가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가?

현행 변호사 책임 구조도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권경애 사건의 교훈이다. 책임 있는 전문가는 법적 구조로는 존재하지만 현실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AI 배심원 제도에서 AI는 판결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의견을 제출하는 것이며, 최종 판단과 책임은 판사에게 있다. AI 설계 단계에서 오픈소스 공개, 독립적 알고리즘 감사, 편향 검증 의무화 등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AI 오류의 책임 문제는 AI 도입을 막는 근거가 아니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의 조건이다.

국가는 AI 민원 처리를 허용하면서 민간 리걸테크는 왜 규제하는가?

2026년 3월 행정안전부는 AI를 전면에 내세운 원스톱 행정서비스 추진단을 출범했다. 같은 시기 대법원은 민간 리걸테크의 법률문서 자동작성을 합법으로 판결했지만, 변호사법 제23조, 34조는 여전히 AI와 법률 전문가의 실질적 협업을 제한하고 있다. 국가가 AI로 민원을 처리하는 것은 행정혁신이고, 민간이 같은 기능을 제공하면 변호사법 위반 논란이 붙는다. 기능이 동일한데 발신자에 따라 합법과 불법이 갈린다면, 그 규제는 국민 보호가 아니라 전문가 독점 보호로 기능하고 있는 것이다.

AI가 사법 절차에 도입되면 무전유죄 유전무죄 문제가 해소되는가?

완전한 해소를 보장할 수는 없다. 그러나 AI 배심원 제도는 이 문제를 구조적으로 억제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판사가 AI 판단과 다른 결론을 내릴 때 그 이유가 공개 기록으로 남기 때문이다. 현재 판사의 재량은 판결문에 이유가 기재되지만 AI 판단과의 괴리가 드러나지 않는다. AI 배심원이 공개 대조 기준이 되면, 재력이나 연줄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때 그 괴리가 가시화된다. 투명성이 불평등을 즉시 없애지는 않지만, 불평등을 숨기는 것을 훨씬 어렵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