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제피네는 왜 보상받지 못했나: AI 시대 창작자 인정의 정치경제학

카프카의 단편 <요제피네, 여가수이거나 아니면 생쥐족이거나>에서 생쥐족은 노래를 들으면서 공동체가 됐지만 가수에게 아무것도 돌려주지 않았다. 2026년 5월, CNN이 AI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저작권 소송을 냈다. 퍼플렉시티는 말한다. "팩트에는 저작권이 없다"고. 그러나 그 사실을 캔 노동은 사라지지 않는다. AI 기업, 플랫폼, 그리고 합의 테이블에 앉지 못한 독립 창작자들의 보상을 둘러싼 구도를 세 측면으로 해부한다.

낡은 목재 무대 위 빈티지 마이크에서 황금빛 입자가 흘러나와 어두운 관객석 실루엣들 쪽으로 사라지는 공연장 장면
빛은 무대를 떠나 관객석에서 사라진다. 보상은 돌아오지 않는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이 글은 전기가오리 2026년 5월자 "카프카는 거꾸로 읽어도 카프카 4 요제피네, 여가수이거나 아니면 생쥐족이거나"를 읽다가 AI 시대 개인 창작자인 요세피네는 어떻게 인정받는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한 것이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5월 31일

생쥐족에게는 노래하는 가수가 있었다. 이름은 요제피네. 그녀의 노래가 정말 특별한지는 아무도 몰랐다. 카프카의 단편 <요제피네, 여가수이거나 아니면 생쥐족이거나>(1924, 책 제목의 번역은 전기가오리를 따랐다)에서 작가는 솔직하게 말한다. 요제피네의 노래는 어쩌면 그냥 휘파람 소리일 뿐이고 다른 생쥐들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가 노래를 시작하면 군중이 모였다. 일상이 멈췄다. 생쥐족은 서로에게 "쉿" 하며 조용해졌다. 피곤한 날에도 전쟁이 코앞에 있을 때도 요제피네 노래 앞에서 그들은 잠시 공동체가 되었다.

요제피네는 그 대가를 원했다. 노동을 면제해 달라고 했다. 생쥐족의 일상 노역에서 빼달라고 요구했다. 공동체는 거절했다. 모두가 일하는 세계에서 예외는 없다는 것이었다. 요제피네는 항의로 노래를 멈췄다.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카프카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요제피네는 사라졌고, 생쥐족은 곧 그를 잊을 것이라고.

카프카가 이 단편을 쓴 건 1924년, 죽기 한 달 전이었다. 100년이 지난 2026년에 이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이유가 있다. 요제피네의 문제가 이제 "예술가로 인정받는 수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오늘의 질문은 이것이다. 공동체가 반복해서 누리는 가치를 만든 사람에게 공동체와 그 안에서 이익을 얻는 자들은 무엇을 돌려줘야 하는가.

생쥐족은 플랫폼이 되었다

2026년 5월 28일, CNN은 AI 검색 엔진 퍼플렉시티(Perplexity AI)를 상대로 뉴욕 연방법원에 소장을 냈다(Cable News Network Inc v. Perplexity AI, Inc., 1:26-cv-04427). 퍼플렉시티가 PerplexityBot으로 CNN의 기사, 영상, 이미지를 긁어 AI 검색 인덱스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1만7천 건 이상. TV 방송사가 AI 기업을 상대로 낸 첫 번째 저작권 소송이다. CNN은 퍼플렉시티가 원본 보도를 재포장해 이용자에게 제공하면서 자신들의 구독 모델을 갉아먹었다고 주장한다.

퍼플렉시티 대변인 제시 드와이어(Jesse Dwyer)는 NPR에 이렇게 말했다. "You can't copyright facts." 사실에는 저작권이 없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요제피네가 떠올랐다. 생쥐족도 같은 논리를 댈 수 있었다. 요제피네의 노래는 다른 생쥐도 낼 수 있는 소리다. 그러니 우리가 그 공기를 마셨다고 해서 특별히 보상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퍼플렉시티도 같은 말을 하는 것이다. CNN이 확인한 팩트는 사실이고 사실은 저작권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걸 재구성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논리에는 의도적으로 지워진 게 있다. 그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전화를 걸고 현장에 나가고 문서를 뒤지고 편집자와 싸운 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팩트는 떨어진 걸 줍는 게 아니다. 팩트는 누군가 캐야한다.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는 Science and the Modern World(1925)에서 이런 말을 했다. 근대 정신의 핵심은 "환원 불가능하고 완고한 사실(irreducible and stubborn facts)에 대한 열렬한 관심"이라고. 그가 말한 건 이것이다. 아무리 해석을 갖다 붙여도 실재한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 퍼플렉시티가 "팩트는 무료"라고 선언해도 그 사실을 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자가 인터뷰를 하고 팩트를 확인하고 글을 다듬은 과정은 어떤 법리 해석으로도 없던 일이 되지 않는다.

누가 돈을 버는가

요제피네 이야기가 100년 후에도 유효한 건, 그것이 보상의 철학이 아니라 돈과 권력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카프카가 진짜 묻는 건 이거다. 누군가의 노동이 공동체에 보탬이 될 때 그 가치를 누가 가져가는가.

2026년 지금 AI 기업, 플랫폼, 그리고 계약 테이블이 이 문제를 세 층위로 만들어냈다.

첫 번째는 입력물을 착취(input exploitation)했다. AI 기업들은 인터넷에 쌓인 창작물을 학습 데이터로 쓴다. 기사, 소설, 음악, 그림, 목소리. 누군가 평생을 들여 쌓은 것들이다. AI 기업들은 그걸 "공개된 데이터"라고 부른다. 공개했다는 게 무제한 학습을 허락한다는 뜻은 아닌데도.

두 번째는 결과물에 무임승차(output free-riding)했다. 퍼플렉시티가 CNN 기사를 요약해서 이용자에게 주면 이용자는 CNN에 안 간다. 클릭이 줄고 광고 수익이 빠지고 구독자가 사라진다. 퍼플렉시티는 2026년 초 기업 가치가 약 212억 달러였고, 연간 반복 매출(ARR)은 2025년 말 약 2억 달러에서 2026년 4월 기준 4억5천만 달러 이상으로 뛰었다. CNN의 취재가 퍼플렉시티의 성장을 받쳤지만 그 수익은 CNN에 돌아오지 않았다.

세 번째는 독립 창작자를 배제(independent creator exclusion)했다. 이게 가장 조용하고 그래서 가장 위험하다.

음악 업계에서 메이저 레이블들이 AI 음악 기업 Udio와 합의했다. UMG는 2025년 10월, 워너뮤직은 2025년 11월 각각 합의하고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겉으로 보면 창작자 보호 체계가 생기는 것 같다. 그러나 2025년 11월 독립 음악가들은 따로 집단소송을 냈다. 메이저 합의는 메이저 카탈로그만 보호한다. DistroKid, TuneCore, CD Baby로 음악을 내는 독립 음악가들의 음원도 똑같이 긁혔지만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 없었다. 메이저와 독립의 차이는 음악의 질이 아니라 협상력이었다.

요제피네는 노동 면제를 요구하다가 거절당했다. 2026년의 독립 창작자들은 테이블에 앉지도 못했다.

보상이 뭔가

여기서 잠깐. 모든 창작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가. 공동체에 위안을 준다고 해서 언제나 특별 지위를 주장할 수 있는가.

카프카의 화자도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요제피네의 노래가 정말로 다른 생쥐들과 구별되는 예술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군중이 모이는 건 노래 때문이 아니라 요제피네라는 인물, 그가 만들어내는 의식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요제피네의 요구가 전부 정당하지는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기준은 이렇다. 모든 창작이 보상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동체가 특정 창작물에 기대어 굴러가는 상황, 그 창작이 없으면 뭔가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최소한의 협상권은 있다. 퍼플렉시티는 CNN 기사 없이는 검색 결과를 채울 수 없었다. AI 모델은 창작자의 작품 없이는 학습할 수 없었다. 이건 한 번 쓰고 끝나는 게 아니라 기대어 굴러가는 것이다.

그리고 보상이 꼭 돈일 필요는 없다. 저작권료와 라이선스는 그중 하나다. 출처 표기, 학습 동의 절차, 협상권, 데이터 사용 거부권도 보상이다. 창작자를 갈아 끼울 수 있는 데이터 덩어리로 보지 않는 것, 그것도 보상이다.

스포티파이는 2026년 5월 21일 UMG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다. 원칙은 "동의 먼저, 생성은 나중(consent first, generation later)"이었다. 학습하기 전에 먼저 동의를 받겠다는 것이다. Suno나 Udio가 했던 "일단 학습하고 나중에 소송 대응" 방식과 정반대다. 스포티파이가 이렇게 한 게 순수한 선의는 아니었을 것이다. 법적 리스크와 신뢰도 계산이 있었다. 그래도 그 계산의 결과가 창작자에게 협상권을 돌려주는 방향이었다.

이게 내가 보는 2026년 창작자 보상 논쟁의 핵심이다. AI 기술이 문제가 아니다. AI가 창작 노동을 흡수하는 방식, 그 방식이 플랫폼에게 이익이 되도록 설계된 것, 그리고 그것을 묵인하거나 더 강화하는 플랫폼의 선택이 문제다.

팩트에는 저작권 없다는 말이 왜 위험한가

퍼플렉시티 대변인의 반론으로 돌아가자. "You can't copyright facts." 법적으로 이 말은 틀리지 않는다. 미국 저작권법은 사실 자체를 보호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말이 완성된 논리인 척 유통될 때 결정적인 게 빠진다.

저널리즘은 사실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사실을 캐고 맥락을 붙이고 독자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만드는 것이다. 거기에는 취재 비용, 편집 비용, 기자의 시간이 들어간다. 퍼플렉시티가 그 결과물로 학습하고 이용자에게 요약해 주고 그 과정에서 기업 가치를 쌓는다면 팩트를 가져간 게 아니라 팩트를 만드는 노동의 경제적 기반을 갉아먹는 것이다.

CNN은 NYT, WSJ 모회사, 브리태니커, 미리엄-웹스터와 함께 퍼플렉시티를 상대로 소송을 낸 언론사 대열에 합류했다. 이 소송들이 공통으로 짚는 건 하나다. AI 기업이 저널리즘 노동의 결과물을 공짜로 가져다 쓰면서 그 노동의 경제적 기반을 허문다는 것.

화이트헤드의 스터번 팩트(stubborn facts)가 여기서 다시 작동한다. 사실은 방향이 없다. 어느 쪽에서도 저항한다. 퍼플렉시티가 "사실은 무료"라고 선언해도 그 사실을 만든 노동이 있었다는 건 없어지지 않는다. 그게 해석에 저항하는 사실이다.

생쥐족의 책임

요제피네는 사라졌다. 카프카의 화자는 담담하게 말한다. 생쥐족은 역사를 쓰지 않기 때문에 가수는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모두가 일하는 공동체에서 특별한 개인을 기억하는 건 사치였다.

그런데 2026년의 우리는 다른 조건에 있다. 디지털 기술은 기록을 남긴다. 누가 뭘 얼마나 소비했는지 다 추적된다. 스포티파이는 이미 이용자가 어떤 음악을 얼마나 들었는지 실시간으로 집계한다. 그 데이터를 AI 학습 보상의 기준으로 삼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다. 그래도 그 데이터를 보상에 쓰지 않기로 한 건 기술이 못 해서가 아니라 플랫폼이 안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공동체가 어떤 것을 반복해서 누린다면 그걸 만든 사람에게 최소한의 것을 돌려줘야 한다. 출처를 밝히는 것, 학습 전에 동의를 구하는 것,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것. 이것들도 보상이다.

요제피네가 원한 게 사실 노동 면제보다 더 작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이 만든 것이 공동체에 실제로 기여했다는 인정. 그것만이었을지도. 생쥐족은 그것도 주지 않았다.

2026년의 생쥐족은 플랫폼이고 AI 기업이고, 알고리즘이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질문 앞에 있다. 정보를 보고, 노래를 듣고 모르는 사실을 확인하고 심지어 이를 빙자해 돈을 받으면서도 아무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하는가.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