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 클로를 설치했다. 그런데 할 게 없더라

오픈클로(OpenClaw)를 설치했다. 텔레그램 봇을 연결하고 첫 리서치를 돌렸다. 결과는 뭐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리고 5초쯤 감탄하다가 깨달았다. 이거 Claude.ai에서 하던 거잖아. AI 도구를 선택할 때 대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유용한 것이 내게도 유용할 것이라는 착각이다. 정작 물어야 할 질문은 따로 있다. 지금 내 업무에서 AI에게 맡겨야 할 것은 무엇인가?

호퍼풍 실내에 플러그가 뽑힌 청소기, 뜯기지 않은 만년필 상자, 닳은 키보드, 위스키 잔이 놓인 책상과 빈 의자
새 도구는 박스째 있고, 닳은 키보드는 오늘도 반질거린다. ©RayLogue: AI-created image(Chatgpt)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5월 30일

터미널을 열고 npm을 돌리고 텔레그램 BotFather에게 경건하게 인사를 건넸다. 봇 토큰을 발급받고 .env 파일에 토큰을 설정하고 텔레그램 채널을 연결했다. 솔직히 혼자 알아서 할 재주는 없어서 뭔가 에러가 날 때마다 클로드에게 물어가면서 했다. 30분쯤 걸렸나. 꽤 뿌듯했다.

그리고 텔레그램을 열어 첫 메시지를 보냈다.

"ailit 리서치: AI 에이전트 자율성"

결과는 뭐 그럭저럭 잘 나왔다. MIT AI Agent Index를 직접 긁어오고 arXiv 논문까지 직접 가져와서 ailit 형식으로 정리해줬다. 내가 스킬로 입력한 4분법 표기도 살아있었고, 팩트체크 섹션도 붙어 있었다.

어참, 텔레그램으로도 되네. 감탄했다. 5초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나 이거 평소에 클로드에서 하던 거잖아. 뭐가 다른 거지?

오픈클로가 뭔지 먼저 알아야 한다

오픈클로는 클로드 등 AI를 텔레그램, 왓츠앱, 디스코드 같은 메신저에 연결하는 오픈소스 프레임워크다. 로컬 머신(내 컴퓨터)에서 실행되고 컴퓨터를 끄지 않는 한 24시간 대기하며 내가 자는 동안에도 스케줄대로 작업을 돌린다. 쉽게 말하면 AI한테 몸을 만들어 준 거다. 창 안에 갇혀 있던 AI가 내 생활 공간 안으로 들어온다.

개발자가 화장실에서 텔레그램으로 "이 버그 고쳐줘" 치면 맥북이 실제로 코드를 고쳐놓는다. 그건 진짜 마법이다. 근데 나는 코드를 안 짠다.

AI 자동화 도구가 빛나는 조건

오픈클로의 진짜 강점은 세 가지가 겹칠 때 나온다. 자동으로, 반복적으로, 내가 안 보는 동안. 이 세 조건이 동시에 성립하는 업무가 있어야 한다.

내 일은 글을 쓰고 논증 구조를 잡고 팩트를 검증하는 거다. 이건 자동화가 아니라 집중이 필요한 작업이다. 그리고 그 집중은 어차피 맥 앞에 앉아서 한다. 브라우저 열기가 병목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픈클로가 줄여주겠다는 그 병목현상이 내 업무에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AI 도구 선택의 함정 - 설치가 목적이 되는 순간

도구가 인상적으로 보이면 일단 쓰고 싶어진다. 특히 설치 과정이 약간 복잡하면 더 그렇다. 뭔가 진지한 일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터미널을 열었다는 것만으로. 그리고 AI로 이런 저런 일을 하고 있으니까 오픈 클로를 깔면 뭐가 더 자동으로 막 될 거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근데 정작 물어봐야 할 질문은 하나다. 지금 내 업무에서 뭐가 병목인가.

글이 안 써지는 건 자동화 부족 때문이 아니다. 생각이 덜 익었거나 자료가 부족하거나 그냥 피곤한 거다. 이런 건 오플클로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AI를 잘 쓴다는 것의 진짜 의미

AI를 잘 쓴다는 건 좋은 도구를 많이 아는 게 아니다. 내가 어디서 막히는지를 먼저 아는 거다. 그걸 모르면 아무리 멋진 도구를 설치해도 아이맥 위에서 조용히 잠만 잔다. 지금 내 오픈클로처럼.

$14 썼다. 수업료치고는 나쁘지 않다. / raylog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