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라는 이름의 야합: 4월 17일, 민주당은 무엇을 버렸나
2026년 4월 17일, 더불어민주당과 위헌정당은 광역비례 14% 상향, 중대선거구 시범 지역 27곳 확대, 지구당 부활을 골자로 한 정치개혁법안에 합의했다. 개혁진보4당이 요구한 광역비례 30%, 2인 선거구 폐지, 헌재가 위헌 선례를 남긴 봉쇄조항 폐지는 모두 무산됐다. 게임 이론으로 읽으면 구조는 단순하다. 법정 시한 위반에 페널티가 없고, 지연할수록 거대 양당에 이익이 돌아간다. 저들은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정치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무엇이 살아남고 무엇이 버려졌는지, 숫자로 해부한다.
레이 | 디지털 저널리스트 | awesome.ai.life@gmail.com | 2026년 4월 17일
2026년 4월 17일, 그러니까 오늘 오후 5시 20분,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이 국회 본청 445호 정개특위 소회의실 앞 복도에 섰다.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장소가 본회의장이 아니라 복도였다는 것이 이미 많은 것을 설명한다. 소수정당에게 허락된 공간이 그렇다.
"선심 쓰듯 선거구 몇 개, 의석 몇 개만 고친다고 거대 양당 중심의 승자독식 선거제도가 바뀝니까."
이날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정상적인 선거 준비를 위해 제시한 정치개혁법안 처리의 실질적 마지막 날이었다. 민주당과 위헌정당은 4월 15일 합의해 17일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개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법안은 예정대로 처리 절차에 들어갔다. 그런데 왜 신지혜 최고는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는가. 무엇이 통과됐고, 무엇이 버려졌는가.
합의안에 담긴 것과 담기지 않은 것
오늘 처리된 법안의 핵심 내용은 세 가지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일부 확대, 광역의원 비례대표 비율 일부 상향, 지구당 부활(정당법, 정치자금법).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숫자가 말한다. 현재 광역의원 비례대표 비율은 지역구 의원 대비 10%다. 오늘 합의안은 이를 14%로 4%포인트 상향했다. 비례 광역의원은 현행 83명에서 27~29명이 늘어난다. 개혁진보4당이 요구한 수치는 30% 이상이었다(레이로그 정치개혁 시리즈). 물론 10%에서 14%로 조정했다면 올리긴 올렸다. 그러나 30%와 14%의 거리는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설계 철학의 차이다.
담기지 않은 것들이 더 중요하다.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전면 도입은 없다. 광역의회 중대선거구 도입 추진은 문구로만 남았다. 봉쇄조항 폐지는 결단되지 않았다.
봉쇄조항이란 득표율이 일정 기준 미만인 정당을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원천 배제하는 조항이다. 헌법재판소(Constitutional Court)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3% 봉쇄조항에 대해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미 나는 내 블로그에서 이를 몇 번 지적했다. 이 판례 이후 지방선거의 5% 봉쇄조항 폐지는 이번 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혔다. 신지혜 최고위원은 "헌법재판소가 나서서 봉쇄 조항은 위헌이라고 밝혔는데 정개특위는 지방선거 봉쇄 조항 폐지조차 결단하지 않았다"고 정확히 짚었다.
헌재가 선례로 확립한 것을 국회가 외면한 것. 이것은 정치적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규범 이행의 문제다.
왜 법정 시한은 이번에도 지켜지지 않았나
공직선거법상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선거일 180일 전인 2025년 12월 5일이었다. 이미 네 달이 넘게 지났다. 22대 국회 정개특위는 역대 지방선거 정개특위 평균 구성 시기(선거 478일 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선거 163일 전에야 출범했다(국회입법조사처 2026년 1월 보고서, 중부일보 재인용). 물론 법정 시한 위반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이후 단 한 번도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을 지킨 적이 없다. 도대체 왜?
법정 시한을 어겨도 제재할 수 있는 페널티 규정이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서휘원 정치입법팀장은 이 구조를 "확정 시한에 페널티가 없으니 무기한 연장이 반복되고, 지연될수록 이득을 보는 건 기득권 양당."이라고 못 박았다(중부일보).
이 구조를 게임 이론으로 읽으면 더 명확해진다. 법정 시한 위반의 비용이 0이고, 위반의 이익이 양의 값이라면, 선거구 획정 지연이 조직과 자금력이 있는 거대 정당에게 유리한 이상 거대양당은 반드시 지연을 선택한다. 규범이 아니라 인센티브 구조가 행동을 결정한다. 페널티 없는 법은 사실상 선언문이다.
지구당 부활은 정치개혁인가, 기득권 돈 정치의 귀환인가
오늘 함께 처리된 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안에는 개악이라 할 수 있는 지구당 부활이 담겼다. 지구당은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지목되어 폐지된 조직이다. 이번 법안은 지역당 명칭으로 부활시키고, 후원회 모금을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의 발언이 다시 한 번 날카롭게 찌른다. "정치개혁 없는 지구당 부활은 정당 민주주의는커녕 기득권 돈 정치만 방조할 것이다." 이것은 감정적 수사가 아니라 썩은 기득권을 냉철하게 파헤치는 구조적 분석이다.
후원회 모금이 허용될 때 누가 유리한가. 이미 전국 네트워크와 지지 기반을 갖춘 거대 양당이다. 소수정당은 지역 조직과 자금 양면에서 비대칭 상태로 경쟁에 진입한다. 지구당 부활이 정당 민주주의를 강화한다는 논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에 담장을 더 높이 치면서 '공정한 경기장'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4월 13일 정개특위 전체회의에서 지구당 부활 법안이 먼저 상정됐을 때, 조국혁신당 정춘생 의원은 "기초의원 중대선거구제, 비례대표 확대, 결선투표제 도입 등 시민들이 요구하는 정치개혁 법안은 하나도 상정되지 않았다"며 소위원회를 퇴장했다. 4월 14일에는 정개특위 위원직을 아예 사퇴했다. "거대 양당이 벌이는 기득권 수호 게임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도구가 되지 않겠다."
퇴장과 사퇴. 두 개의 몸짓이 하나의 진단을 담고 있다.
적대적 공생이란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과 위헌정당은 평소 격렬하게 대립한다. 그런데 지구당 부활 앞에서는 신속하게 합의했다. 도대체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위헌정당 세력은 당장 해산해야 할 존재지 합의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나 이들이 어디 한 두 번 그랬나. 이들의 패턴은 항상 일정했다.
이 패턴을 설명하는 언어가 있다. 참여연대는 이 구조를 "물과 기름처럼 서로를 헐뜯던 두 정당이 기득권 앞에서는 적극 협력하는 적대적 공생 관계"라고 규정했다(한국NGO신문). 적대적 공생(antagonistic symbiosis)이라는 개념은 정치생태학에서 온 것이지만 한국 양당 정치의 현실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정확한 언어를 찾기 어렵다.
두 정당이 서로를 공격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존재로부터 이익을 얻는 구조. 선거구 획정을 지연하면 소선거구, 2인 선거구 체계가 유지되고 그 체계 안에서 두 거대 정당은 독과점적 지위를 보존한다. 이 이익은 이념적 차이를 초월한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오늘 처리된 합의안을 "기득권 양당의 누더기 법안"이라고 불렀다. 표현의 강도가 아니라 내용의 정확성을 보아야 한다. 광역비례 14%는 개혁진보4당의 30% 요구와 비교해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윤건영 의원 스스로 "원래 민주당은 30%로의 확대를 얘기했다"고 인정했다. 상향"이라는 사실은 맞다. 그러나 무엇을 기준으로, 얼마나 상향했느냐가 개혁의 실질을 결정한다.
무엇이 바뀌고 무엇이 남았나
오늘 처리된 법안으로 6·3 지방선거에 적용될 선거구는 확정됐다. 선거는 예정대로 치러진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음도 사실이다. 2022년 8회 지방선거에서 경기, 인천 기초의원 무투표 당선 선거구 34곳 전부가 2인 선거구였다. 208만여 명이 투표용지를 받지 못했다(중부일보). 이번 중대선거구 일부 확대가 이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는가. 전면 도입이 아닌 부분 확대는 구조 전환이 아니라 구조 보완이다. 무투표 당선을 생산하는 2인 선거구의 논리는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살아남는다.
비례성(proportionality)의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평가하는 이론이 있다. 득표율과 의석률의 격차가 클수록 유권자의 의사가 의석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왜곡이 발생한다는 논리다. 오늘 처리된 법안은 이 왜곡을 완화하는가, 아니면 다른 이름으로 연장하는가. 이것이 이번 정치개혁의 실질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농성장은 오늘도 거기 있었다
개혁진보4당은 2026년 3월 9일부터 국회 본청 앞에서 천막 농성을 벌였다. 심지어 민주당과 5당 공동선언문을 서명했다.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그러나 오늘 신지혜 최고위원이 선 자리는 본회의장이 아니라 복도였다.
소수정당의 연대 전략은 언제나 이 딜레마를 안는다. 연대하면 개혁의 명분을 제공하지만 실질을 얻기 어렵고, 거부하면 고립된다. 교섭단체(5석 이상) 지위가 없는 소수정당은 정개특위에서 법안 수정권을 사실상 갖지 못한다. 이 구조 안에서 공동선언문의 문구는 거대 정당의 재량에 맡겨진다.
오늘 통과된 법안이 무엇인지 이제 우리는 안다. 선거구 몇 개가 조정됐고, 비례 비율이 몇 퍼센트 올랐고, 20년 전 폐지된 지구당이 다른 이름으로 돌아왔다. 선거는 6월 3일 예정대로 치러진다.
그러나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득표와 의석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 거리 안에서 소수정당은 여전히 사표를 생산하고, 유권자는 여전히 전략적 선택을 강요받는다. 법정 시한을 다음번에도 어기는 구조적 이유는 오늘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농성장은 철거됐는지 모른다. 그러나 농성을 만든 구조는 그대로다. 이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대한민국에서 위헌정당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민주당에 분노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FAQ
Q1. 2026년 4월 17일 통과된 정치개혁법안의 핵심 내용은 무엇인가?
더불어민주당과 위헌정당이 합의해 본회의에서 처리한 법안의 골자는 세 가지다. 첫째, 광역의원(시, 도의회의원) 비례대표 비율을 현행 10%에서 14%로 4%포인트 상향해 비례 광역의원을 현행 83명에서 27~29명 추가한다. 둘째, 기초의회 중대선거구 시범 지역을 2022년 지방선거의 11곳에서 27곳으로 16곳 확대하고, 광주·전남 행정통합에 맞춰 광주 4개 지역구에 광역의회 최초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한다. 셋째, 시도당 하부 조직에 사무소 1개소를 허용하는 지구당 부활(정당법, 정치자금법 개정)이 포함됐다.
Q2. 개혁진보4당(기본소득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사회민주당)이 이번 합의에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개혁진보4당은 광역비례 30% 이상 확대, 기초의회 2인 선거구 전면 폐지, 헌법재판소 위헌 선례가 있는 봉쇄조항 폐지를 요구했지만 모두 무산됐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안의 광역비례 14%는 요구치 30%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민주당 정개특위 간사 윤건영 의원 스스로 "원래 민주당도 30%를 얘기했다"고 인정했다. 조국혁신당 서왕진 원내대표는 "기득권 양당의 누더기 법안"이라고,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은 "기득권 야합"이라고 규정했다.
Q3. 봉쇄조항이란 무엇이고, 왜 이번에 폐지되지 않았나?
봉쇄조항이란 득표율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정당을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원천 배제하는 제도다. 지방선거에는 5% 봉쇄조항이 적용된다. 헌법재판소는 국회의원 비례대표 선거의 3% 봉쇄조항에 대해 소수정당의 의회 진입을 가로막는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 선례를 근거로 지방선거 5% 봉쇄조항 폐지가 이번 개혁의 핵심 과제로 꼽혔으나, 거대 양당은 결단하지 않았다. 봉쇄조항이 유지될수록 소수정당의 비례 의석 진입은 구조적으로 차단된다.
Q4. 지구당 부활이 소수정당에 불리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구당은 2004년 불법 정치자금의 온상으로 지목돼 폐지됐다. 이번 법안은 '지역당' 형태로 부활시키고 후원회 모금을 허용한다. 문제는 후원회 모금 역량이 이미 전국 네트워크와 지지 기반을 갖춘 거대 양당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이다. 조직력과 인지도에서 출발점이 다른 소수정당은 자금 비대칭 상태로 경쟁에 진입하게 된다. 기본소득당 신지혜 최고위원은 "정치개혁 없는 지구당 부활은 기득권 돈 정치만 방조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Q5.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이 반복적으로 지켜지지 않는 구조적 이유는 무엇인가?
공직선거법상 지방선거 선거구 획정 법정 시한은 선거일 180일 전이다. 2026년 6·3 지방선거 기준으로는 2025년 12월 5일이었다. 그러나 2016년 이후 단 한 번도 이 시한이 지켜진 적이 없다. 핵심 원인은 법정 시한을 어겨도 부과할 수 있는 페널티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위반 비용이 0이고 지연의 이익(조직, 자금력 있는 거대 정당에 유리한 불확실성 지속)이 양의 값인 구조에서 거대 양당은 합리적으로 지연을 선택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2026년 1월 보고서에서 선거구 획정 권한의 독립기관 이관과 정개특위 상시기구화를 권고했으나, 이번 합의에는 반영되지 않았다.